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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 상주 읍성(邑城) 복원 탄력 받나

인봉동 35-5번지 유적, 상주읍성 성벽 최초 확인
김현숙 기자 / hyun0218@nate.com입력 : 2021년 03월 30일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이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의 허가를 받아 발굴 조사 중인 상주시 인봉동에서 상주읍성의 성벽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3월 29일 상주시에 따르면 상주읍성은 인봉동 35-5번지 유적(면적 233㎡)에서 발굴됐으며 성벽은 체성부 아래의 기저부만 확인됐다. 이는 1912년 일제의 읍성 훼철 당시 지상의 성벽이 철거됐고 성벽 기저부 위쪽이 임시 도로로 사용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지적도 상에 ‘성도(城道)’로 표기한 것도 이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일제 강점기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성벽 자리 위에 건물들이 건축되면서 기저부도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였다.

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기저부의 규모는 길이 760㎝ 정도로, 조사 대상지의 북쪽과 남쪽 조사 경계 밖으로 이어져 있다. 너비는 성벽 외벽 쪽인 동쪽 지대석에서 내벽 쪽인 서쪽으로 470㎝ 정도만 확인됐고 나머지는 유실되었다. 높이는 40㎝ 정도만 확인되었으나 성벽 기저부를 견고하게 축조한 양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지대석은 가운데 부분이 유실되고 5매만 확인되었으며, 이 역시 조사 경계 밖으로 계속 연결되는 양상이다. 이와 별도로 성벽 동쪽의 일제 강점기 건물지 지반 보강을 위해 훼철된 성벽의 큰 성돌이 다수 사용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축조 시기는 성벽 기저부의 다짐층과 보강층에서 조선시대 전기 백자종지편이 출토되어 조선시대 전기로 판단된다.

문헌기록에 따르면 상주읍성은 1385년(고려 우왕 11년)에 축조된 후 일제(日帝)의 읍성 훼철령(1910년)에 따라 헐리게 되는 1912년까지 520년 이상 유지되었다. 고려 말 왜구 침임에 대비해 만들어진 읍성은 조선 초기 경상감영(慶尙監營)을 둠으로써 당시 경상도의 행정·문화·군사적 중심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표조사와 연구를 통해 성벽의 위치에 대해 추정만 했을 뿐 그 실체는 확인하지 못했다.  

조사 대상지가 일제 강점기(1913년)에 제작된 지적도에 성도(城道)로 표시된 부분에 해당함을 현재 지적도와의 비교를 통해 확인했고, 바로 이 자리가 상주읍성의 북동쪽 성벽임을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밝혀냈다.

이번 발굴조사는 문화재청 문화재보호기금(복권기금)을 활용해 한국문화재재단에서 진행 중인 「매장문화재 소규모 발굴조사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다. 발굴 현장은 30일(화) 오후 2시 일반에 공개된다. 현장에서는 코로나19와 관련한 생활 속 거리두기를 준수하기 위해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발열 확인과 손 소독제 사용,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등 방역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다.


김현숙 기자 / hyun0218@nate.com입력 : 2021년 0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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